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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후보생

  • 작성자 : 전창일
  • 조회 : 29,871
  • 15-10-28 13:56

크리스천 후보생

일전에 한 사촌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언니의 글을 읽어보니 이제는 정말로 Christian이 되셨군요. 신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좋은 크리스천으로 계속 생활 하시기를 빕니다." 이 이메일을 읽어보고 사실은 무척 곤혹스러웠다. 이유는, 내가 한 번도 나 자신을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인 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쓴 수필 「천국이란 수수께끼」에서 하나님의 개입과 돌보심을 받았던 일과 하나님을 좀 더 이해하며 기독교 신앙을 배우기 위하여 교회생활을 한다고 비교적 자세하게 적어놓았었다. 하지만 내가 실천하는 기독교인이라고는 생각하여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자격이라고는 고작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 불과 하였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성경을 더욱 이해하고 특히 예수님의 사랑을 좀 더 깊게 피부로 느낄수록 나는 기독교인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하면 할수록 나는 반비례하여 기독교인으로써의 자격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크리스천이 되었어, 아주 행복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우선 그들이 부럽고 다음에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신자가 되었지 하는 궁금증이 뒤따른다. 나는 10년 가까이 교회를 다녔지만 아직도 크리스천 후보생에 불과한데.

기독교인이 되는 훈련과정과 군대의 장교가 되는 훈련과정을 나의 경험을 통하여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마도 내가 이야기하려고하는 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한지 1개월 만에 나는 공군 갑종장교 후보생으로 입대하였다. 국민의 의무를 수행하고자 시험까지 보면서 22의 새파란 젊은이로 입대 하였던 것이다. 처음 4개월은 사람을 군인으로 개조하는 군사 기초훈련이었다. 단체생활 적응, 명령 절대복종, 체력단련, 시간엄수, 포복, 달리기, 비상훈련, 사격훈련, 총기분해 및 소제, 완전무장 구보, 내무반 청소, 군사이론, 일기 쓰기, 전우애 기르기 등등 일반 사회생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내었다. 무척 힘은 들었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 단련과 정신 무장을 통하여 군인 정신이 충만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장교로써의 손색이 없는 모든 자격을 다 갖추었다고 장담하면서 하루빨리 고된 후보생 생활을 마치고 부대에 소속되어 소정의 임무를 다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보생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특수병과 훈련까지 끝낸 후 항공의료원 연구부에 배속되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였다. 군사화학 강의, 공군기지 안의 수질 검사 등의 맡은 일 이외에도 임상 생화학 연구, 항공 비상식품 개발 등의 임무를 무사히 하면서 44개월 만에 제대하였다. 이와 같이 불과 4-6개월의 장교후보생 훈련은 성공적인 장교로써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충분하였다.

그런데 교회를 10년 가까이 다니면서도 기독교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자신감은 전혀 없는 것같이 느껴진다. 아니 점점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공군장교 후보생 때와는 정반대이다. 당시에는 4개월도 안 되어 자신감이 넘치지 않았던가? 크리스천 후보생 훈련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며 태산같이 느끼는 이유는? 장교 후보생 때에는 상관에게 무조건 복종하였으며 예의를 차렸고 (하나님께도 그렇게 철저히 복종하고 있으며 예의를 잊지 않고 있는가?), 수양록이란 일기를 통하여 철저히 그날그날의 잘못을 반성 하였고 (회개를 그렇게 하고 있는가?) 자존심은 사라졌었고 (모든 자존심을 다 버렸는가?) 행군 시는 군가를 항상 힘차게 불러야만 하였다 (찬양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가?). 당시의 그러한 단단한 정신무장이 지금의 내 크리스천 후보생활에서는 없다. 정신무장의 결여 때문에 내가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고 있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50여 년 전의 모든 것은 스스로 깨달아 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매질과 군율로 다스려져 이룬 것이다. 물론 은혜나 사랑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러한 일시적 정신무장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2000여 년 전에 예수님이 이곳에 오신 것은 분명히 기적이다. 내가 자신 있게 인정하는 오직 하나의 기적이다. 그분은 사랑을 가지고 오셨으며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또 보여주셨다. 그래서 나도 사랑이 되었는가? 분명히 사랑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거칠며 성내고 남 몰라라하며 육신을 탐하며 향락에 빠지고 욕심뿐이며 비도덕적이고 등등 나쁜 일들을 전적으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또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바늘구멍을 통과하여 천국으로 가는 것은 낙타만큼이나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부를 단호하게 거절치 못하며 때로 주어지는 특혜도 모두 포기를 못하기 때문이다. 더하여 나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특별이 하는 일도 없으니. 천국 가는 것은 고사하고 가장 기본적인 기독교적 정신도 결여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내가 사랑이 된다면 신앙이란 기적이 나한테도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적은 오직 예수님만 보여 주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의 어려움이란? 아마도 나에겐 불가능한 사랑이 되려고 하는 기적을 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크리스천 후보생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후보생 생활은 이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며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며 기쁨을 잃지 않는 크리스천 후보생 생활로 나의 삶을 마감할 것을 다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기적은 주시지 않아도 나를 진정한 가치가 있는 예술품으로 다듬어 주시지 않을까?


이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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