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일까?
- 작성자 : 박창현
- 조회 : 29,815
- 16-03-22 22:32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일까?
거룩한 생활을 하는 자, 평강이 넘치는 자, 낮어져서 섬기는 자, 헌신적으로 사는 자...등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생활의 모습인 것이고, 더 본질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자유를 얻은 자>입니다. 자유를 얻은 자가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고, 평강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며, 낮아져서 섬길 수가 있는 것이며,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고 헌신적인 삶을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이 얻은 자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을 묘사할 때, 자유케 된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번제나 화목제나 속죄제를 드리는 것도 율법을 범한 죄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고, 희년은 사람이나 땅이 50년 마다 매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성령으로 난자란 바람같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람의 특징은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 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성령으로 난 자는 다 이러하니라."(요3:8)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모든 것을 다 통합하여 우리가 육신과 죄와 마귀로 부터 벗어나서 참 자유자가 되게 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도 참 자유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갈4:7)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라."(갈4:3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체는 바로 <자유인>입니다.
그럼,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자유인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1. 육신으로 부터의 자유
여기서 말하는 육신이란 '몸(소마)'이 아니라 '육신(사릌스)'입니다. 즉, 육신적 모든 욕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육신의 오관의 욕구를 따라'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함직한 '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서 죄인이 된 것이고,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육신의 욕구를 못박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마침내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아울러 자신의 육신도 십자가에 못박힌 자로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롬6:6)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갈2:20)
바울 자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이는 너희가 죽었고..."(골3: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겨야 합니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지니라."(롬6:11)
성경이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으니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에 의해 실제로 육신의 욕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사실로 믿고 확신할 때, 현실로 그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즉, 육신의 소욕으로 부터 벗어난 자, 해방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
율법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 (롬7:12). 그런데 왜 우리가 이 좋은 율법으로 부터 벗어나야 합니까? 율법은 죄인을 위하여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딤전1:9)
이러므로 율법은 사람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쳐 주지만 죄를 아니 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결국 율법은 온 세상을 정죄하여 심판아래 두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롬3:19)
즉, 하나님처럼 거룩하지도 못하고, 의롭지도 못하고, 선하지도 못한 인간은 마땅히 죽어야한다고 율법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은 인간들에겐 정죄하여 사망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율법이 있음으로써 죄가 권능을 갖게 되고, 사망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율법을 옹호하고 자랑을 합니다. 율법은 지켜지는것이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이 율법을 아무리 잘 지키려고 해도 하나에만 걸려도 다 걸리는 것이 된다했으니 누가 이 율법의 그물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율법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죄인이 되고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율법은 지켜지는 것인데 완전히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죽은 만큼만 지켜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세력이 죽은 사람에게는 율법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죽은 <남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죽었으면 그 남편에게 주어진 법도 따라서 죽은 것이 되므로 율법은 있으나 마나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 났느니라."(롬7:2)
여기서 남편이란 옛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남편의 법이란 율법을 말합니다.
이렇게해서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 부터 벗어나게 되어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육신)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 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율법)으로 아니할지니라."(롬7:6)
우리가 율법아래 있다면 반드시 죄인이 될 것이지만 이제는 율법으로 부터 벗어났으므로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죄와 사망으로 부터의 자유를 얻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을 순종하여 죄의 종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으니..."(롬6:17)
3. 환경으로 부터의 자유
육신의 욕망(물질.성.명예등)으로 부터 벗어나고, 율법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자는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아무 것에게도 종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 외에는.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에서 탐나는 것도 없으며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죽음조차 공포의 대상은 아닙니다. 죽음이 모든 두려움의 궁극적 원인인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니 두렵거나 염려할 것이 더 이상 있을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자유인인 것입니다. 물질도, 명예도, 성에도 더 이상 유혹되지 않습니다. 가난, 질병, 핍박, 협박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죽음을 하루 앞두고도 감옥에서 태평하게 잠을 잤으며,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갈5:1)
그리스도인은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께서 주신 멍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마귀의 사람들은 온갖 명목의 멍에들을 성도의 어깨에 메어주고 빨리 가지 않는다고 뒤에서 채찍질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으로 인한 자유를 선포해 놓고는 육체의 종을 만들려고 합니다. 복음이 율법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을 구실로...그러나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오해하면 육신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저희(부도덕한 자들)가...자유를 준다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벧후2:19)
어떤 사람들은 다시 율법의 종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너희(율법주의자들)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핬었던 멍에(율법)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행15:10)
이토록 성도들을 다시 종으로 삼고자 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는 말씀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최근에 유명하다는 여러 모임들에 참석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마음을 씁쓸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스타목사라는 분들은 신자들을 규합해서 무엇인가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겉으로 표방하는 것은 다 <주님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남의 양들까지 유혹해서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조직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물질과 충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지만 제가 볼 때엔 <자기 아성 구축>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자들은 성도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갖가지 명목으로 조직화하여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충성하는 그룹들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지금은 어느 때 보다 성도들이 분별력과 지혜가 있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경건(말씀이나 은사등)을 이익의 재료로 삼으려는 자들(딤전6:5)을 신자들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갈2:4-5)
거룩한 생활을 하는 자, 평강이 넘치는 자, 낮어져서 섬기는 자, 헌신적으로 사는 자...등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생활의 모습인 것이고, 더 본질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자유를 얻은 자>입니다. 자유를 얻은 자가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고, 평강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며, 낮아져서 섬길 수가 있는 것이며,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고 헌신적인 삶을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이 얻은 자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을 묘사할 때, 자유케 된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번제나 화목제나 속죄제를 드리는 것도 율법을 범한 죄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고, 희년은 사람이나 땅이 50년 마다 매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성령으로 난자란 바람같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람의 특징은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 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성령으로 난 자는 다 이러하니라."(요3:8)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모든 것을 다 통합하여 우리가 육신과 죄와 마귀로 부터 벗어나서 참 자유자가 되게 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도 참 자유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갈4:7)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라."(갈4:3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체는 바로 <자유인>입니다.
그럼,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자유인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1. 육신으로 부터의 자유
여기서 말하는 육신이란 '몸(소마)'이 아니라 '육신(사릌스)'입니다. 즉, 육신적 모든 욕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육신의 오관의 욕구를 따라'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함직한 '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서 죄인이 된 것이고,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육신의 욕구를 못박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마침내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아울러 자신의 육신도 십자가에 못박힌 자로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롬6:6)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갈2:20)
바울 자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이는 너희가 죽었고..."(골3: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겨야 합니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지니라."(롬6:11)
성경이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으니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에 의해 실제로 육신의 욕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사실로 믿고 확신할 때, 현실로 그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즉, 육신의 소욕으로 부터 벗어난 자, 해방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
율법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 (롬7:12). 그런데 왜 우리가 이 좋은 율법으로 부터 벗어나야 합니까? 율법은 죄인을 위하여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딤전1:9)
이러므로 율법은 사람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쳐 주지만 죄를 아니 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결국 율법은 온 세상을 정죄하여 심판아래 두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롬3:19)
즉, 하나님처럼 거룩하지도 못하고, 의롭지도 못하고, 선하지도 못한 인간은 마땅히 죽어야한다고 율법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은 인간들에겐 정죄하여 사망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율법이 있음으로써 죄가 권능을 갖게 되고, 사망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율법을 옹호하고 자랑을 합니다. 율법은 지켜지는것이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이 율법을 아무리 잘 지키려고 해도 하나에만 걸려도 다 걸리는 것이 된다했으니 누가 이 율법의 그물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율법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죄인이 되고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율법은 지켜지는 것인데 완전히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죽은 만큼만 지켜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세력이 죽은 사람에게는 율법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죽은 <남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죽었으면 그 남편에게 주어진 법도 따라서 죽은 것이 되므로 율법은 있으나 마나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 났느니라."(롬7:2)
여기서 남편이란 옛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남편의 법이란 율법을 말합니다.
이렇게해서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 부터 벗어나게 되어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육신)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 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율법)으로 아니할지니라."(롬7:6)
우리가 율법아래 있다면 반드시 죄인이 될 것이지만 이제는 율법으로 부터 벗어났으므로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죄와 사망으로 부터의 자유를 얻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을 순종하여 죄의 종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으니..."(롬6:17)
3. 환경으로 부터의 자유
육신의 욕망(물질.성.명예등)으로 부터 벗어나고, 율법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자는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아무 것에게도 종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 외에는.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에서 탐나는 것도 없으며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죽음조차 공포의 대상은 아닙니다. 죽음이 모든 두려움의 궁극적 원인인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니 두렵거나 염려할 것이 더 이상 있을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자유인인 것입니다. 물질도, 명예도, 성에도 더 이상 유혹되지 않습니다. 가난, 질병, 핍박, 협박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죽음을 하루 앞두고도 감옥에서 태평하게 잠을 잤으며,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갈5:1)
그리스도인은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께서 주신 멍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마귀의 사람들은 온갖 명목의 멍에들을 성도의 어깨에 메어주고 빨리 가지 않는다고 뒤에서 채찍질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으로 인한 자유를 선포해 놓고는 육체의 종을 만들려고 합니다. 복음이 율법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을 구실로...그러나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오해하면 육신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저희(부도덕한 자들)가...자유를 준다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벧후2:19)
어떤 사람들은 다시 율법의 종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너희(율법주의자들)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핬었던 멍에(율법)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행15:10)
이토록 성도들을 다시 종으로 삼고자 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는 말씀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최근에 유명하다는 여러 모임들에 참석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마음을 씁쓸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스타목사라는 분들은 신자들을 규합해서 무엇인가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겉으로 표방하는 것은 다 <주님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남의 양들까지 유혹해서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조직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물질과 충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지만 제가 볼 때엔 <자기 아성 구축>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자들은 성도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갖가지 명목으로 조직화하여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충성하는 그룹들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지금은 어느 때 보다 성도들이 분별력과 지혜가 있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경건(말씀이나 은사등)을 이익의 재료로 삼으려는 자들(딤전6:5)을 신자들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갈2:4-5)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