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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세우신 가정, 바로 세우라

  • 작성자 : 박창현
  • 조회 : 29,872
  • 16-05-08 00:59

[기독공보에 실린 글입니다]

한 부부가 계속 갈등을 겪다가 상담을 받으러 왔다. 첫 상담을 한 후 두 번째 상담에서 부부는 상담은 계속 받되 같이 있으면 싸우게 되니까 일시적으로 별거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그 때 세자녀 중 막내가 엄마에게 부탁하기를 엄마와 아빠가 떨어져 살면, 그 동안 아빠 때문에 키우지 못했던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자고 요청을 했다. 아내는 아빠도 없고, 아이들도 외로워할지 모르니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 부부는 별거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고, 그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렸다. 그 때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가 이렇게 엄마에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 그러면 고양이는 어떻게 되는거야?” (What about our cat?) 이 대화 내용은 실화이다. 어쩌면 현재 가정의 붕괴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가정에서 한 일원이 떨어져 나가도 애완용 동물보다도 못한 관심을 서로 보인다면 그러한 가정은 비극이다.

“가정을 바로 세우라”는 주제는 이렇듯 가정이 흔들리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사실 늘어나는 이혼율, 외도, 청소년들의 가출, 원조 교제, 동성애자들의 급증 등은 가정의 응집력을 깨뜨리며, 이러한 엄청난 변화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더욱 불안해하고, 패배주의적 사고에 젖어들게 한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적절한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교회가 고백하는 가정 신학과 가정 목회의 상관성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지난 10여년간 가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정보다는 교회에 대한 헌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교회와 가정을 반목적인 관계로 보려는 경향이 남아있다.


가정에 대한 신학적 접근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셨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 2:18)고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각각 보완적 관계를 이루어가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나님의 주례사인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라는 말씀에서 좀더 분명해 진다. 즉 부부관계는 육체적 한 몸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고백을 하는 부부는 부부의 차이를 오히려 축복으로 알고, 계속해서 성숙해가는 관계를 만든다. 그러한 부부는 마치 아담이 하와를 처음 보았을 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 2:23)는 찬사를 했던 것 처럼 서로를 향하여 “당신은 나의 전부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고백하며 산다. 그렇기에 성경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육체가 되는 결혼을 일컬어서 “이 비밀이 크도다” (엡 5:32)라고 설명한다. 즉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허락하셨기에 그러한 결혼을 통해서 놀랍고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됨을 가르쳐 준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만드신 가정이 붕괴되고 파괴되는 현상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있다. 그것은 본래 하나님께서 조직하시고 만드신 형상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외형적인 가정의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시고 조직해 주신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었을 때 가족 관계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언약(covenant)의 개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듯이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이러한 언약적 관계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셔서 먼저 자녀로 삼으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근거한다.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부모의 언약에 뿌리를 둔다. 자녀는 태어나는 것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부모가 희생의 값을 치루고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를 낳는다. 그렇다고 자녀가 계속 사랑받기만을 원한다면 유아기적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자라나는 아이는 부모의 사랑에 반응하여야 하며,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지만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녀 삼으심에 대해서 반응하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시며 기다리신다. 이러한 언약의 개념은 가족신학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요즘 서로 의심하는 부부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각종 도청장치와 흥신소를 통한 미행, 핸드폰 사용처 확인 등 마치 첩보 영화에나 나타날 일들이 부부에게서 일어난다. 이러한 관계는 가족 언약이 이미 깨어졌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서 서로가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고 믿어줄 수 있는 언약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배우자를 주셨다고 하는 믿음과 그러한 관계가 영속적인 언약의 관계임을 고백하는 가정은 외부의 어떤 위협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사랑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적 관점에서 배우자를 보고, 자녀를 보고, 그러한 관계를 원하기만 하면 파기할 수 있다는 태도는 부부관계와 가족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가정에 대한 목회적 접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가정이 붕괴되어가고 신뢰에 바탕을 둔 언약적 가족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서 교회는 어떻게 이러한 가정들을 도울 수 있을까? 그것은 최근에 강조되고 있는 가정사역이다. 가정 사역하면 우리는 먼저 어떤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그러나 가정 사역 (Family ministry)은 가정·가족과 함께하는 사역 (Ministry with families)이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갈랜드와 팬코스트는 가정 사역은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식적 그리고 비공식적 체계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체계, 교회의 구조와 모든 프로그램에 개입하고 그것을 평가하는 하나의 관점(perspective)”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하면 가족 관계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고안된 프로그램이나 구조들에 대한 뼈대 (Framework)를 제공하는 것으로 가정 사역을 본다.

물론 이러한 가족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가정 사역을 하는데에는 당연히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현재는 필요에 따라 진행되는 아버지 학교, 대화교실, 결혼예비교실, 시어머니-며느리 학교, 노인 학교 등이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주로 리더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는 교육적 모델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평신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소그룹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홀부모 가족 (특별히 여성)들에 대한 사역 (Single-parent families)이다. 즉 남편과 사별했거나 이혼, 별거 등으로 혼자서 자녀를 키우는 여성들을 돕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역이다. 또한 각 연령에 자녀를 둔 부모들로 학부모회를 구성해서 그들의 문제를 나누고 또한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프로그램을 시작하거나 (특별히 다양한 중독이나 습관성 행동 치료를 위한) 12단계 성경공부 방식을 도입해서 자기 치료 (self-help)또는 자기 지원(self-support) 그룹을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회에서 장기적 가정 사역을 위해서는 가정 생활 주기 (Family life cycle)에 따라서 각 교회에 맞도록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맺는 말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조직하시고 재정하셨으며,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기를 원하신다. 가정이 바로 세워지려면 먼저 부부가 하나님께서 주신 배우자임을 믿고 고백하며 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육체적, 정서적, 심리적, 영적으로 한 몸을 이루어가야 한다. 동시에 교회는 목회적으로 부부 관계의 성장을 돕기 위해 다양한 가정 사역이 제공되어야 하며 그때에야 본래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아름다운 가정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홍인종/ 장신대 교수(목회상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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