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자 김수진이 본 대한민국 ♡
- 작성자 : 박창현
- 조회 : 29,880
- 16-10-03 01:20
♡ 탈북자 김수진이 본 대한민국 ♡
백년이 떨어진 곳에서 백년을 앞선 곳으로 왔다.
나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들어섰다. 북한에서 꿈꾸던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대한민국에 있었다.
대한민국은 천국(天國)이다. 진실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거짓을 읽으며 살아온 것으로 해서 세상을 내 눈으로 직접 느껴보기 전에는 절대 감정 표시를 잘하지 않는 나는, 그때 이곳이 우리를 받아주는 조국이라는 감동 속에서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당분간 우리들의 집인 국정원으로 가는 길에서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북한에 대비한 중국의 거리들을 보고 감동에 젖었던 그것은 봄 눈 같이 사그러지고 중국을 대비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황홀한 광경에 내 입에서는 “아, 아” 하는 신음같은 작은 소음이 새어 나왔다. 말문이 터지지 않았다.
시(詩)에서 내가 노래했듯이 백 년이 떨어진 곳에서 백 년을 앞선 곳으로 단숨에 다달았으니 내 외침이 막힐 수 밖에 없었다.
국정원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들을 실은 버스가 곧장 병원으로 향해지더니 우리들의 건강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검진을 시작했다.
세심한 검진이 시작되었고 이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설비들 앞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약이 없는 병원, 설비 없는 병원에서 치료는 생각도 못하고 중국에서 밀수해 들어오는 흔한 정통편(正痛片: 중국산 두통약)으로 아픔을 달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폭포치듯 흘러내렸다.
국정원은 엄숙한 곳이기도 했지만 우리들을 태국에서부터 보듬어주고 품어준 곳이기도 했다. 수천 리 길을 헤쳐온 우리들의 수난의 옷들은 속옷부터 시작해서 겉옷, 신발, 머리띠까지도 세세 낱낱이 바꾸어졌다.
나는 그때 내가 입은 모든 옷들을 속옷부터 겉옷, 신발, 생활필수품 모두 개수를 세어보았다. 모두 세어보니 40여 가지가 되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것들을 국민의 부담으로 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배려해 주었다. 그래도 그 물품들을 들고 북한처럼 어디에 서서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 같은 것은 시키지 않았다.
500g 간식 한 봉지를 받고도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 앞에서 군침을 삼키며 먼저 인사를 해야 했던 우리들. 빼앗긴 것이 더 많건만 적게 차려지는 그것조차도 선물이 되어 90도로 허리를 굽혀 감격해 해야 했던 어제의 날들이 허거프게 안겨왔다.
국정원에서의 조사를 마치고 선생님들의 따뜻한 바래움 속에서 이제 우리가 살아갈 삶의 진로를 가르쳐주는 하나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하나원의 수업들에서 내가 제일 기다리는 시간은 한국사(韓國史) 시간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이 한국사라고 생각했으며 한국사 교과서를 꼼꼼히 체크해가면서 역사적인 연대(年代)들과 시기들을 수첩에 적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석 달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을 보내고 하나원을 수료하였다.
2013년 8월, 나는 꿈 속에서도 그리던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 국가가 우리에게 배려해준 임대 아파트로 들어가기 전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거기에는 나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주민등록증을 품에 안았을 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 앞에서 목이 메여 눈물을 흘렸다.
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되기 위하여 탈출을 꿈꾸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 죽음과도 같은 탈출의 길에서 헤쳐온 가시 덤불길들,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추억으로 내 마음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주민등록번호가 내 심장의 한 곳에 소중히 자리잡았다.
드디어 국가가 정해준 나의 집으로 들어섰다. 규모가 반듯하고 쓸모 있게 꾸려진 집, 바닥과 천정, 기술적으로 잘 계산되어 있는 집은 종합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내 마음에 꼭 들었다.
꾸릴 수 없어 꾸리지 못했던 북한의 창고 같은 집들이 떠올랐다.
대충 꾸리고 살았다는 나의 집, 이 집에 비하면 쓸모없는 헛간 같아 보인다. 이제 그 집을 머릿속에 떠올리기도 싫다.
아무것도 없는 집이지만 푸근함이 확 밀려왔다. 황홀한 나의 삶의 거처지, 나의 집 만세를 부르고 싶다. 방안에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았다.
전기 밥가마에 쌀을 앉히고 살짝 스위치를 누르니 “쿠쿠가 맛 있는 밥을 시작합니다” 하는 소리가 노래처럼 내 귀를 간지럽힌다.
"아- 나는 행복하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국도 끓이고 반찬도 하며 일부러 전자레인지를 켜본다. 신비해서 어쩔 줄 모른다. 샤워수(水)에 실컷 몸을 잠그고 나와 건발기(드라이어)로 머리를 날리며 상쾌함을 만끽한다.
설거지대의 온수에 손을 잠그고 이윽토록 말없이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전기가 없고 수도가 막혀 찬물도 없어 물바케츠를 들고 우물가에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물이 고이기 힘든 우물바닥을 모래와 함께 퍼내던 일, 물 한 바케츠를 위해 밤잠을 자지 못하고 달과 함께 우물가를 지켜서던 밤들, 어쩌다 나오는 수돗물에서 지렁이와 거머리를 건져내며 그 물을 그대로 마시면서도 다행으로 여겼다.
일터에서 돌아와 전기가 없는 저녁 어둠 속에서 더듬어 키를 열고 기름 등잔 아래서 내내 자욱한 방 안에서 추위에 떨며 찬물에 손 담그던 일, 그 모든 악몽(惡夢)과도 같은 것을 말끔히 쓸어버린 대한민국의 나의 집.
1970년대 김일성이 여성들을 부엌 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해방시키겠다고 열렬히 선전한 3대 기술혁명의 만세가 전기밥가마 한 개도 해결하지 못한 북한이 아니라 이 대한민국에서 이미 오래전에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전기를 명절선물로 받으며 ‘배려 전기’라는 세계 어느나라 사전에도 없는 이상한 부름말로 전기를 보는 것이 소원이어서 명절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북한 인민들의 모습이 하루 종일 켜도 깜박하지 않는 TV 앞에서 설움을 불러내고 있다. 실컷 집을 만끽하고 밖으로 나왔다.
확 트인 대통로를 따라 끝이 없이 걷고 싶다. 도로는 나라의 얼굴이라고 일컫는다.
대한민국의 도로들은 신화적인 도로였다. 공중에 선 도로들, 그 위로 달리고 있는 물매미같이 반들거리는 자동차들. 이것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한민국의 진면모가 하나, 둘, 나를 향해 다가왔다. 먹을 것이 너무 흔해서 무엇부터 입으로 가져갈지 생각이 나지 않는 날들, 그 음식들 앞에서 대성통곡 하기도 했다. 삼백만의 굶어 죽음 속에 합쳐진 내 친척들, 내 고향의 어린이들과 노인네들, 쌀이 없어 갓난아기를 업고 밥가마 앞에서 눈물을 짜던 나의 동생, 그 모든 것이 내 설움을 불러와 통곡을 터뜨리게 했다.
먹을 것이 흔한 곳에서조차 노인네들,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관, 그들을 위한 혜택,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아파트들 마다에 있고 노인네들이 들러 쉼 할 긴 벤치들이 거리의 곳곳 아파트의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북한에서 꿈꾸던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대한민국에 있었다.
대한민국은 천국(天國)이다. 나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들어섰다. 천국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내 몫이다.
나는 아끼고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내 삶을 시작하려고 했고 북한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을 꼭 이루기 위해 각오하고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통일작가(統一作家)로 나의 생(生)을 빛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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