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 3분전 - 이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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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4-24 02:18
지구 종말 3분전
이영무
이 글의 제목은 일부 종말론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지각있는 최첨단 핵물리학자들의 깊은 우려를
나타내는 성명서이다. 지난 2016년 1월 26일 원자
과학자 저널The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은 스탠포드 대학에서 지구 최후의 날을 측정하는
비유적(은유적) 시계를 보여 주었다. 여기서 비유한 3분이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악화되는지를 강조한 것이다. 자정 3분전, 여기서 자정은
지구 최후의 날을 의미한다. 으스스하고 그 절박성을 피부로 느끼게 만드는 표현이다. 많은 인사들이
이날 이 은유적 시계를 드려다 보았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브라운,
전 국방장관 윌리암 페리,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등도 이 모임에 참석하여 원자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자정을 향하여
발사준비 되고 있는 이 시계를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이 모임은 물론 위기감만을 조성하는 그런 자리는
아니었다. 정치인들을 포함한 일반인들도 좀 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모임이었다. 브라운 주지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 못하고 방관하는 태도에 크게 개탄하였다. 모임을 준비한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구 온난화와 핵무기
확산 위협은 정말로 ‘심각한 우려’가 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다행히 생각이 있는 몇몇 정치인들은 이 ‘심각성’을 오래전부터 감지하고 노력을 해오고 있다. 브라운 주지사와
오바마 대통령은 지구의 온난화를 반전시키기 위하여 애쓰고 있으며 전 국방장관 페리는 누구보다도 핵무기의 확산을 걱정하는 분이다. 그에 의하면
극열 테러분자들이 소규모의 핵무기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북한 같은 불량국가도 수소탄 실험을 하였다니 페리의
말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다. 이 모임에서 토론된 사항은 아니었지만, 2050년 까지는
바다에 떠도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여기에 서식하는 물고기보다도 더 많아 진다고
한다. 끔찍한 환경오염 뉴스이다. 나도 이 지구가 ‘정돈된’ 상태에서 ‘혼란된’ 상태로 치닫고 있는 속도가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가속화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가속은
위에서 언급한 지구 온난화, 핵무기의 위험성 , 그리고 환경오염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극도로 위험한 상태까지 오게 되었는가?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또 이 탐욕의 촉진제 역할을 하는 요소는 (1)신을 부정하는
정신세계의 부패와 타락, (2)과학기술의 오용과 지나친 신뢰 그리고 (3)과거를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습관의 결여 등을 들 수 있다.
나는 내가 은퇴하기 전(약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은 이성적 존재’ 라고 믿었다. 즉 19세기 초반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합리주의 철학(헤겔, 칸트)이 주장하는
“이성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왔다. 너무나 순진하였던
나였던가?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자: 가난한자와 부자의 극심한 차이; 소수의 돈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추세; 없어지지 않는 편견; 0.1% 부자들의 꺼지지 않는 대단한 탐욕.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분명히 아니다. 도리어 칸트나 헤겔과 상반되는 쇼펜하우어(1788-1860)의 철학적 비관주의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에 의하면
"모든 인간의 행위는 만족할 수없는 욕망 그리고 악의적-맹목적인
의지"의 결과라고 말한다. 현재의 추악하고 잘못 되어가는 세상에 딱 부합되는
논리이다. 물론 "돈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라며 이
세상을 반전 시키려는 이상주의-사회주의를 따르는 사람도 있으나 욕망과 맹목적 의지의 사람들에게는 중과부족이다. 거대한 그들의
바퀴에 깔리고 만다. 몇 명의 억만장자들이 미국을 극도의 보수적 체제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2008년의 대
경제침체를 가져온 뉴욕 증권가의 악덕 면모도 이제는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지나친 탐욕이 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많은 보수적 공화당 의원들은 아직도 지구 온난화 현상을 부정하고 있다. 그들은 돈
많은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회사들은 기름을 최대한 파내고 소모 시켜야만
부가 축적된다. 다른 지하자원의 발굴도 비슷하다. 발굴 과정은 심한 자연의 훼손을 가져오며 또한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 모두가 온실효과를 가져오는 주범들이다. 더하여 큰
회사들은 해외에서 물건을 싸게 만들어 와서 팔아야만 큰 수지를 얻을 수 있다. 이 외국으로 보내는 하청은 대부분 중국이나 인도
또는 저개발국가로 보낸다. 이 나라들은 석탄이 아직도 주요 에너지로 사용한다. 석탄 역시
지구 온실화의 주범이다. 많은 부자들은 지구의 생명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심사이며 오로지 부의 축적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 사람들이 만들어낸 핵폭탄은 지구를 가루로 만들고도 남을 엄청난 양이다. 자주 국방, 전쟁 제어라는
기치아래 함부로 생산하여 왔으며 이제는 위험천만한 불량국가도 그 생산에 박차를 가고 있다.
북한은 돈이 몹시 필요하면 핵폭탄을 ISIS 같은 테러분자들에게
팔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NY Times, Editorial "Time to Take North Kora
Seriously, February 14, 2016). 그들은 맹목적 나름의 욕망을 위해서는 사들인 핵폭탄을 쉽게 터트릴 수도 있다. 그들 신의
이름으로.
지구에 공룡이 서식했던 25-200만 년 전을 잠깐 생각해보자. 다양한 공룡들이
존재하였음을 발굴된 화석들은 보여주고 있다. 작고 크고 엄청난 크기의 공룡들,
새 모양의 공룡, 무시무시하게
덤벼드는 사나운 공룡, 초식, 육식의 공룡들, 갑옷을 입은
공룡 하여간 형형색색의 공룡들이 지구 전체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Michael Crichton의 ‘주라기 공원’ 영화를 상상하시기를. 그들은 먹이를 위해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하였을
거다. 그들이 차지한 공간과 시간은 작고 약한 다른 동물들이 공존할 수 없게 만들었지 않았나한다. 약육강식의
시대, 먹이를 구하려고 으르렁대는 소리, 영토를 확보하기위한 처절한 싸움, 죽이고 살리는
소리가 요란하였을 거다. 그런 상태로 수백 만 년을 살아왔다. 창조자의
눈에는 그 공룡들이 어떻게 보였을까? 아마도 본능의 욕망만을 위해서 싸우는 그들에게서 앞으로의 지구의 희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무슨 이유에서 어떻게 해서 공룡들은 거의 하루아침에 지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새로운 동물들이
창조되고 지구의 동물 분포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또 진화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오늘날 지구의
인간들은 수백 만 년 전의 공룡보다 좀 나은가? 아마도 더 추악하게 보일 것이다.
사람들의 탐욕은 궤도를 벗어나서 조절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날그날의 배고픔 때문에 으르렁 거리며 먹이를 찾았던 공룡들은 차라리 단순하고 양순하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그들로부터
지구의 미래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공룡들은 외부의 힘 때문에 멸망하였다고 믿는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스스로 재앙의 요소를
만들어 멸망의 길을 택하여 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두개의 대형 로켓이 Count Down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 중의 하나만이라도 발사에 성공하면 지구는 그
최후를 마지 할 것이다. 3분전 12시(자정)의 시계
침을 누가 어떻게 뒤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을 찾기 전에 무엇이 지구 최후의 날로 가는 것을 촉진시키는가를 생각하여 보아야한다. 다시 말하여
무엇이 탐욕을 부채질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대인들 마음의 황량함이 문제다. 과학 기술의
발전을 과신하면서부터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믿음의 세계를 파괴시키는 괴물로 변하여 가고 있다. 그들은 또
공감을 잃어가고 있으며 자기숭배가 심해가고 있다.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고 생각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이나
습관을 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다가오는 재앙을 역전시킬 수 있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거대한 괴물들의
발굽 밑에 깔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앉아서 보고만 있음은 비겁하지 않은가? 이러한 절박한
그 유래가 없는 재앙에 직면한 신앙인들의 자세는? 우선 기복신앙을 지양하고 모든 악의 뿌리 요소인
탐욕을 마음속에서 조금씩 이나마 다른 사람들보다도 앞서서 없애가는 것이다. 기복신앙은 탐욕을 더욱 크게 또 악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이 즐겨 부르는 Francis
E. Aulbach의 ‘우리 주님께’의 가사 일부를 소개한다.
"오- 주여 의지케
하시고 날 정복하시사 승리 하소서". 이 노래가사를 묵상하여보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자기가
얼마나 어려운 존재인가, 즉 자기가 자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하나님에게 의지하여 자기의 잘못된
모든 맹목적 욕망(식욕, 성욕, 명예욕, 소유욕 등
포함)을 정복시켜 달라는, 그래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문이다. 참으로 영감있고Inspirational 아름다운 기도문이다. 또 궁극적으로 우리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막아달라는
기도문이기도 하다.
허나, 기복신앙에서는 위의 기도문을 이렇게 고쳐야 할 것이다. "오 - 주여 함께 하여주셔서 부와 건강을 주심으로 승리 하옵소서". 이것은 기복신앙이 만들어낸 축복 받았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기도 - 일종의 ‘미국 신’ 에게 기도하는 것에 불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도문은 ‘병 속의 제니’ 에게 하는 마치 당연한 요구처럼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기복신앙은
"멸망 3분전"의 위기를 역전 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악화 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사람의 욕망을
부채질 하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Albauch의 ‘우리 주님께’는 영감적이어서 가슴을 찌른다.
하지만 기복신앙의 ‘우리 주님께’는 너무나 인간적이며 자극,
선동적이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영감적 혹은 선동적? 지구 최후의
날을 방지하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영감적이어야하며 ‘우리 주님께’를 외우며 노래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맹목적 욕구와
끊임없는 욕망은 불행이도 우리 스스로가 정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찬양기도문이 지각있는 크리스천 사이에 공감대를 이루며 필요한 절대 숫자를 이룰 수 있다면 지구 종말을 반전 시킬 수 있는 가물가물한 희망의 불빛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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