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교회

이웃과 민족과 세계를 향하여

목사와 자기 객관화 훈련


목사와 자기 객관화 훈련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박상근 목사


흔히 목사를 목자라고 부릅니다. 그 의미가 제대로 쓰이면 그 보다 아름다운 말은 또 없습니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양떼를 인도하고, 때를 따라 꼴을 먹이는 목자의 열정! 양들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목숨을 걸고 양들을 보호하는 목자의 헌신! 그러나 목자라는 의미가 남용될 경우 정말 위험하고 비인격적인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평신도들은 약하고, 어리석고, 우둔한 양들이고 목사는 자신만이 초자연적인 능력과 은총을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무자비한 영적인 학대가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집니다. 중세 천년 암흑기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일들은 지금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초적인 소양이 자기 객관화 훈련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을 하면서도,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목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목사가 평신도들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회개하라고 외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동일한 기준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평신도들이 목사의 잘못을 지적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평신도들은 목사의 잘못에 대해 속으로는 온갖 욕설과 비난을 해도 겉으로는 웃음으로 대합니다. 어리석은 목사들은 그 웃음이 자신의 완벽성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라고 믿고, 더욱 자기 우상화의 늪에 빠져듭니다.


모름지기 목사는 자신의 건강한 영성과 성도들에게 주는 상처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주기적으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비판하고 분석하는 훈련이 정말 필요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을 난도질하여 예리하게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실수뿐만 아니라 자신의 속 깊이 감추어진 문제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들여다보는 훈련을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목사의 문제는 누구도 얘기해 주지 않습니다. 본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해부하고 열어 제치는 고통의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지 않으면 머지않은 시간에 자신의 무덤을 파야할지 모릅니다.


목사들이 남들 앞에서 천국을 설교하고, 회개를 요구하다 보면 자신은 대단히 정의로운 존재라는 환상에 쉽게 빠집니다. 그러면 자신에 대한 작은 비판도 용납하지 못하고, 교인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 쉽습니다. 그야말로 영적 빈곤의 악순환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지금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자신이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신의 욕망과 야망이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되지는 않는지, 처절한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그게 예수님께서 주기적으로 하셨던 방법이기에 목사 또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에 덧붙여 목사는 정무적 판단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행동과 말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생각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을 다 하고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 목회자의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직분자를 뽑는 투표 중이었습니다. 장로 투표가 끝나고 장로님들이 당회실에서 검표를 하는 동안 목사가 (당회의 동의도 없고, 은퇴 당시 원로가 되지 않으면 원로 장로가 될 수 없다는 헌법조차 위반하며) 기습적으로 이미 은퇴한 지 몇 년 된 장로를 원로장로로 세우기를 요청하였습니다.(그 장로는 그 교회에서 재정적인 문제를 일으켜서 치리를 받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불법이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목사는 개의치 않고 강요하여 통과시켰습니다. 뒤늦게 검표를 끝내고 돌아온 장로님이 그 상황을 알고 불법성을 강력히 주장하여 원로장로통과를 취소해야 했습니다. 왜 이런 코미디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까? 목사가 자기 객관화 훈련에 실패하고, 자기 우상화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런 파괴된 영성으로 어떻게 양들을 제대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양들이 불쌍할 뿐이지요.


목회자가 자기 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약점을 정기적으로 알게 된다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겸손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영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목사는 자신이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자기 객관화를 훈련함으로써 주님의 진정한 제자로 다듬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 축복의 열매는 성도들이 먹게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