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되돌아봄은 곧 발전의 계기인 것이다 - 이영무
- 작성자 :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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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9-06 15:49
과거를 되돌아봄은 곧 발전의 계기인 것이다: 신앙도 예외가 아니다.
이 영 무
과거를 되돌아보며 반성을 하지 못하여 거듭되는 실패로만 끝나는 운명을 주위에서 또 역사 속에서 많이 본다. 그래서 Spanish-American 철학자인 George Santayana 는 말하기를 "과거를 기억 못하는 사람들은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는 운명에 처해지고 만다"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라고 하였다. 이씨 조선이 그렇게도 굴욕적인 패배와 치욕을 일본에게 두 번이나 당한 것도 지도자들이 과거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창의적인 대처를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세 번째의 역사적 반복이 상상도 못할 형태로 다시 오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역사를 돌아보며 자극을 받아야 한다. 6.25 와 같은 한국전쟁은 반복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역사적 의식 (Historical Consciousness) 과 안목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때 이다.
우리들의 신앙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기도를 위해서 또 신앙의 성숙과 그 지속을 위해서 부단히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변하며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아래에서 이야기 하여 보겠다.
우리 신앙인들이 가끔 기도에 대한 회의를 혹 느끼고 있는가? 응답이 없어 실망하고 기도에 자신이 없어지고 등등의. 또 다른 질문으로 우리들은 구원을 받았을 때의 감격을 계속 가지고 있는가? 그 감격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신앙의 위기를 느낀 적이 있는지? 좀 일반적인 질문으로 사람들은 현재의 생활이 Slump 에 빠져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머리는 항상 혼란스럽고 초점을 맞출 수 없으며 이리 밀리고 저리로 떠 다니는듯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 많은 정보에 묻혀서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세상이 하도 빨리 발전하고 변하여 자기의 뿌리나 Identity 를 잃어 버리고 있는듯한 생각에 휩싸여 있는가? 슬픈 순간이 많으며 과거의 자기와 솔직한 대화를 못하고 있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 생활에 Slump 를 가끔 느끼며 기도에 대한 회의나 신앙의 위기는 신앙인들에게 거의 주기적으로 찾아 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급격히 변하는 과학 기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는 점점 낙후 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문 하기도 한다. 도대체 "내가 누구인가?" 하고.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태에서 그냥 머물게 되면 개인의 발전이 없고 때로는 우울증을 유발 시킬 수 있으며 웃는 시간이 줄어들어 빨리 늙는 현상까지 일어나게 된다. 이런 문제들을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자극이 필요하고 창조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어야 하며 또한 자기의 반성이 중요하다. 이러한 자극, 창조, 반성을 위하여는 꼭 우리의 짧았던 과거나 아주 오래 전의 일들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봄이 왜 곧 발전으로 이어지는지 몇 개의 예를 들면서 좀더 상세히 생각해보자.
미리 밝혀두고 싶은 것은 이 글은 나 자신에게 그 실천을 촉구 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많은 분들은 이미 제가 이야기 하려고 하는 내용을 오래 전에 이미 깨달으시고 앞서 생각하는 것도 알고 있다. 복습으로 읽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계속 하겠다.
1. 올바른 기도를 위하여 – 오래 전의 자기 기도 내용을 기억 하는지? 그 기도의 응답이 있었는지? 응답이 없었다면 그 이유를 생각하여 보신적이 있는가? 아주 중요한 질문은 그 기도의 응답이 당장 없었기에 나중에 더 좋은 결과를 경험하여 본적은 있었는지? 기도를 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당장 눈앞의 위기를 모면 할 수 있는 피난처를 달라고; 자기와 가족의 행복과 부를 달라고; 좀더 좋은 자기의 출세를 위하여 등등. 이러한 기복신앙에 근본을 둔 기도가 기도의 전부라면 진정한 신앙인인가? 진정한 신앙인의 기도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나오는 램프 속의 제니 (Genie in the lamp) 에게 요청하는 기도와는 엄격히 달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기도는 전지 전능 ( Omniscience, omnipotence, omnipresence) 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불과 몇 분 후의 미래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멀고 먼 미래까지도 보시고 역사 하신다는 것을 명심 하여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기도가 당장, 꼭 응답 될 수만은 없다고 생각된다. 지금 당장의 응답이 긴 기간을 두고 보면 결코 최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근 목사님도 이에 대한 설교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정한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모두의 이익과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는dynamic을 변수로 넣을 때, 다시 말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큰 뜻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 없이 내놓는 기도들은 여과 (Filtering)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가수 겸 배우인 Harry Connick, Jr. (Dolphin Tale 2) 의 말을 인용해본다: “하나님은 우리들 누구 보다 크신 분이다, 그리고 우리를 넘어서는 그 누구 보다. 나는 기도할 때 아무런 특정한 기도라고는 하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해 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기도의 역사가 아주 짧은 나 이지만 수년전의 응답 되지 않은 기도를 되돌아가서 반성하여 보았다. 그 기도가 무엇보다도 너무나 근시안적이며 자기중심인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는 당장 몇 년 간은 힘이 들었지만 훨씬 좋은 결과를 나중에 가져다 주셨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물론 하나님과 허물없는 사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친 아버지에게 하듯이 부탁도 수시로 드리고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언급한 올바른 기도란 개개인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둔다. 이 기도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여 보면서 우선 우리의 기도는Genie 에게 요청하는 식의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상황에서나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절대적으로 믿는 나의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을 드리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올바른 기도의 해답을 찾는 중에 새겨 들을만한 시, 기도문을 발견하여 여러분과 나누어 보고자 한다. 그것은 타골 (Rabindranth Tagore) 의 “결실의 추수 (Fruit Gathering)” 의 79번째로 나오는 시문이다.
결실의 추수 (LXXIX) (이 영무 번역)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달라고 기도를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위험을 대결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나의 고통을 없애달라고 기도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삶의 전쟁터에서 구원군을 요청하는 기도는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나 자신에 싸울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나를 구해달라고 초조한 두려움에 사로 잡히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자유를 얻기 위한 인내를 주십시오.
비겁자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직 내가 성공을 했을 때에만 주님의 자비를 느끼게 하여 주십시오;
하지만 내가 실패 하였을 때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이 타골의 기도문은 분명히 제니에게 하는 요청 기도문과는 다르다.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힘과 용기 그리고 인내만을 주시길 기도한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가슴을 뚫는 감격을 주는 기도문이다: "내가 잘될 때만 하나님의 자비한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시고 넘어졌을 때 그 손길을 내려주십시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타골은 자유-의지 (Free Will) 란 개념을 이해 하였던것 같다. 그래서 자기의 자유-의지를 구사 할수있는 그 힘과 용기만을주십사고 기도한다.
타골은 인도를 서방세계에 알린 20세기 초의 사람이다. "기독교인들보다 나은 기독교인이다 (Better Christian than Christians)" 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기독교의 핵심을 이해하고 기독교와 많은 교류를 한 독특한 인도 사람이다. 바로 기독교를 이해 하였기에 인도를 서방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더하여 그는 아시아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1913년에 받았다. 위에 인용한 시를 읽어보면 그는 공식적으로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인과 같은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내가 내 과거의 어떤 기도문을 기억하여 생각하고 반성하던 중 나 나름대로 생각하는 타골의 성숙한 기도문을 여러분과 나누어 보는 것이다.적어도 나에게는 새겨 들을 기도문으로 들린다.
2. 구원의 감격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하여 – 유태인들에게는 고대의 추억이 곧 영적인 연결을 가져다 준다. 애굽 탈출은 그들에게 가장 큰 구원이었으며 그 감격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들은 모든 노력을 다한다.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그들이 멸망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의 Passover 를 유월절에 낭독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옛날로 돌아가 그때의 생활을 재현하려고 한다. 구약에서 백성들의 구원된 이야기를 전하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무교병을 포함한 Seder 라는 당시의 그때 상황을 상기시키는 유월절 음식을 지켜먹는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얻은 자유가 그냥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노예로부터 해방된 민족으로써의 경험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유태인들의 지혜와 실천에 감탄할 뿐이다. 그들의 종교의식과 생활에서 볼 수 있듯이 뒤를 되돌아봄 (향수, 추억) 은 유태인들에게 영적인 면에서 극히 중요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노예가 되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그들은 창의적인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내 개인의 구원의 감격은? 분명히 있었다. 단지 그 구원을 마음으로 깊이 느끼고 머리로 확인하기 까지는 40년 이상이 걸렸다. 그 구원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상세한 기록을 남겼고 또 창의적인 과학적 고찰도 함께 적어놓았다 (“천국이라는 수수께끼”). 또 교회생활을 통하여 신앙의 바탕을 다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 감격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40여년전으로 돌아가 과거의 눈과 미래의 눈으로 구원의 사건을 동시에 봄으로써 영적인 Vision 을 얻는 것이다.
3. 이웃을 위하여 - 무관심-냉담 (Indifference) 은 사회적 종교적인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프란시스 교황이 얼마 전 지적하였듯이 "우리는 세계화된 무관심 속에 빠져있다. 이웃의 괴로움에 익숙하여 있고; 그들의 고통이 나에게는 상관이 없으며; 걱정되지 않으며; 내 일이 아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점점 “현재와 바로 자기가 서있는 장소" 만 중요시하고 앞도 뒤도 보지 못하고 있다. 점점 자기 숭배에만 빠져 들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 무관심-냉담이야 말로 기독교정신에 제일 어긋나는 행위중의 하나이다. 이웃과 더불어 아름다운 배려의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기독교정신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공감 (Empathy) 과 친절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또 많은 어린아이들은 공감하는 부모 없이 자라기 때문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자라고 만다. 기독교인은 이러한 흐름을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슬픈 상황이다.
지금 세계는 빈부의 격차가 가속화 되고 있다. 예로 미국과 남미의 여러 작은 나라들이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나라를 버리고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이유가 가난이 주원인이다. 미국내의 개인들을 살펴보면 0.1 - 1% 의 사람들이 전체 재산의 40% 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통계는 개인별 차이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진 자가 없는 자에 대한 무관심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없앨 수 있는가? 교육자 - 철학자이고 노벨상 수상자인 Elie Wisel 은 말하기를 "무관심은 인간의 명예를 지키고 높이려는 모든 노력의 적이라고" 하였다. 또 그는 말하기를 "교육이나 연민을 가지고 무관심과 싸우고 그것을 완화 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과거를 기억 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자기의 올챙이 시절로 되돌아가서 현재의 자기와 비교하여 보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쁨만 있었던가? 아니면 불행했던 순간도 있었던가?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도취에만 빠져있었던가? 혹은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준 사람이 있었던가? 이렇게 생각하고 고민해보는 자체가 곧 발전인 것이다. 왜냐하면 기쁨이나 행복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기 때문이다. 이어서 현재와 미래를 보는 눈이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과정 중에 무관심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 이웃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지 않기 위하여 자주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4.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 박상근 목사님의 말씀대로 우리들은 그 신앙을 유지하고 성숙하게 하기 위하여는 부단한 힘든 노력을 계속 하여야 한다. 한번 받은 그 감격과 은혜는 저절로 지속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원래의 감격을 잊어 버리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도전을 받기도 하고 처음에 세워놓은 결심에 가지 못하고 한때 억제하였든 탐욕이 다시 자기를 지배하게 되고 유혹에 빠져들고 등등 수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영적인 위기를 가져다 준다. 비록 그 위기를 잘 넘겼다 하더라도 그것이 후에 다시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한다. 신앙인들에게 영적인 위기는 공통분모로서 존재한다.
성 어거스틴도 한때 심한 영적인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기가 하나님께 처음으로 전향한 그때로 되돌아가 당시의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열망, 포부 기쁨 등을 책으로 남긴다. 원래의 열망으로부터 표류되는 자기를 발견하고 옛날로 돌아가 목적지를 확인하며 궤도수정을 하여서 이탈하지 않고 나아가게 한 것이다.
우리들은 영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한 방법은 성 어거스틴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극복을 위한 첫 단계 는 기독교인으로 전향하였던 바로 그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당시 자기의 열망이 어떠하였으며 신앙에 대한 미래의 계획이나 희망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여 내는 것이다. 어디서 언제 어떻게 출발하였는지를 알면 그 미래도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5. 과거와 진정으로 대화하기 위하여 - 되돌아봄으로써 어떤 마음의 창문을 얻게 된다. 이 창문을 통하여 우리는 과거의 잘못이나 불행을 내다 볼 수 있다. 자기가 했던 잘못의 리스트는 끝을 찾아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길고 길다. 우리들은 이 되돌아 볼 수 있는 마음의 창문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 인가를 깨닫게 된다. 웬만한 잘못은 스스로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당수는 너무나 수치스럽고 죄스럽고 비굴하기까지 하며 거짓말까지 보탠 잘못들이라 그냥 덮어서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부패하여 없어지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깊은 곳에 숨어있다가 어떤 계기에 뛰어나와 건재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승을 떨며 우리를 괴롭힌다. 기도하고 속죄한다 하지만 되돌아와 못살게 군다. 과거의 잘못으로 남은 많은 수치스러운 상처들을 어떻게 지워버리나? 아마도 끊임없이 기도하고 속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 이외에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잘못이 자랑으로 변할 수 있는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 하는 것만이 과거와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우리들의 기도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6. 뿌리나 Identity 를 지키기 위하여 - 미국에 머무른 지가 이제 50년 가까이 되었다. 이민 자체가 커다란 변화였으며 또 이민생활 중에 몇 개의 중요한 변천(Transition) 이 빠르게 지나갔다. 독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고 부모가 되었으며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사이 사이 직장도 바꾸고 현역에서 은퇴를 하였다. 내부 외부로 그 변화는 항상 끝이 없는 것같이 느껴진다. 이민생활과 그 생활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다 보면 나의 뿌리나 정체 (Identity) 에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온다. 과연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 속해있으며 또 Identity 는? 이런 혼란이 오면 나는 과거를 되돌아보곤 한다. 그러면 그 향수와 추억은 나를 진정시켜 주곤 한다: 나의 뿌리가 확실해지며 추억은 나의 Identity가 흔들리는 것을 없애준다. 내가 가장 즐겨 찾는 추억은 8살 전후의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 중에서도 조부모님이 60여년 전까지 사시던 전통적 한옥에서 즐겼던 일들이다. 그 예로 그 오래된 한옥의 큰 대청에 앉아보고 강아지를 만지며 놀기도 하고 뜰에 핀 꽈리꽃을 바라보며 오리를 몰고 시냇가로 나가 같이 물장난을 치며 자상한 조부모님들의 얼굴들, 고모, 삼촌들과의 장난 몸싸움 등등. 이 기억들을 더듬을 때마다 아주 좋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같으며 활력을 넣어준다. 또 어렸을 때의 철없는 용기도 생기곤 한다. 최근에 이 추억을 시로 표현하여 보았다 (아래).
옛 성터의 옛날 집
성북동, 성곽의 북쪽 동네
그 성터의 산 밑에 솟은 하나의 한옥
안방, 사랑방, 손님방, 또 뒷방들
안방 - 손님방 사이의 대청
손님방- 사랑방 사이의 서재
안방 쪽으로 불길이 솟는 세 개의 가마솥 부엌
방으로 둘러 싸인 사각형의 뜨락엔
봉선화, 꽈리, 싱그러운 라일락, 아카시아 내음
추운 겨울 김 오르는 부엌 옆의 우물과
이끼와 잡풀이 더러 엉크러진 옛 기와
이 집이 60여년 전의 조부모의 옛집 이어라
한 소년은 7살 때부터 이 한옥이 너무 좋아서
30리 길 멀다 하지 않고 홀로 전차를 타며 즐겨 찾는다
나눔 없는 사랑을 주시는 할머니 두분
파도 없는 바다 같은 사랑의 할아버지
장난하며 놀 수 있는 고모들 아저씨들
왕자가 따로 있는가? 전부 나를 반겨 주는데
새벽에 홰치는 수탉
뒷마당 우람한 소나무 그늘 밑의 암탉들의 둥우리
벼룩을 털어내는 대청 밑의 바둑이
오리떼 몰며 개천에서 멱 즐기면
길고 긴 여름철의 저녁이 소년을 기다리곤 한다
부엌 도마 위의 칼질 소리 사라지고
대청의 빨래 방망이 소리도 잊혀 지는데
사랑과 서재의 불빛은
뜨락으로 새어 나오네
할아버님 기침 소리는 창호지를 뚫어 나오고
밤은 점점 깊어가고 조용하지만
할아버지 글 쓰시는 소리는 들리듯 하며
깊은 잠에서 잠깐 깨어난 소년은
안 주무시는 할아버지 걱정
그 걱정은 꿈이 되고
꿈속에서 느끼는 그 분의 숨소리
소년은 할아버지의 품속에서 자고 있구나
옛 성터 뒷산은 풀이 우거지고
샛길 따라 올라 내려다보면
앞산도 삼선교도 한눈에 들어오네
지금도 마음은 그곳에 머물며
그리운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 계시냐고
마음만은 항상 뒷산에 올라서
옛집을 내려다 보며
그리운 분들의 얼굴을 찾고
음성을 귀로 모으네
아아 그리운 그 옛 성터의 옛집
멀리 멀리 사라진 그 그리운 집이여
이 시는 불연속적인 순간 순간의 기억들을 함께 묶어서 지어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어 나가야 할 결집력있는 전통을 보게 된다. 이러한 행복하고 좋은 기억들을 나 자신의 작은 노력으로 아내, 아들, 며느리, 손자들과 함께 이루어 나가보자. 후손들이 언젠가는 그들의 기억들을 더듬으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찾아냄으로써 힘든 시간이 올 때 활력을 넣어주고 그들의 뿌리나 Identity 를 지속하는 힘이 되리라.
7. 현 생활의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하여 – 얼마 전 한 신문에서 록스타 스팅 (본명은 Gordon Matthew Thomas Sumner) 에 관한 기사를 읽어 보았다. 그는 스타덤에는 일단 올라갔으나 중년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노래를 오랫동안 전혀 쓸 수 없는 스럼프에 빠진다. 그런데 문득 그가 옛날 살던 영국의 북쪽 한 마을로 돌아가서 어렸을 적의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마을은 세계에서 제일 큰 배들을 만들었던 조선소가 있던 곳이었다. 그 마을의 이것 저것을 만져보고 어린 시절의 물건과 홍수와도 같이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느끼고 하였을 때 갑자기 그의 창작 능력은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과거의식 (Historical Consciousness) 속에는 생각하며 느끼면 찾아낼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묻혀 있었던 것이다. 예로 그가 알던 마을사람들의 특징들과 그 조선소 마을을 떠나고 싶었던 욕망들을 기억하여 낸 것이다. 그의 새로운 노래들은 그 기억들을 종합하여 당시의 생활 그대로 (life as it really is) 를 표현한 독특한 노래들이라고 한다. 나도 “The Last Ship”이라는 그의 노래를 들어 보았다. 이 노래는 “열정, 신앙, 전통”으로 서로 단단히 엮어진 조선소 마을을 그린 것으로 그곳을 다른 뜻이 있어 떠났다가 15년후에 돌아왔을 때의 회포를 표현한 것이다. 록 음악에 무지한 나 조차도 매력을 느꼈다. 그의 노래들은 큰 히트를 치기 시작하였으며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 한다고 한다. 당시에는 스팅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마을이 나중에 와서는 그의 창작 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하는 은인의 마을로 되었다. 우리도 현재 생활에서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순간들이 미래에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우리들도 발전 없는 답보 상태에 있거나 답답한 마음이 계속되면 과거로 한번 돌아가 당시의 생각나는 물건들을 만져보고 느끼고 사람들도 만나보는 자세한 기억을 들추어내면 어떤 자극이 생겨 발전하기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답답한 마음이거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에 과거의 앨범을 들여다 보곤 한다. 고된 공군장교 훈련시절의 앨범이 내가 좋아하는 앨범중의 하나다. 들여다 보는 중에 언제나 웃음이 나오고 쭉 한번 훌 터보고 나면 허전 하였든 마음이 즐거움으로 차며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하여진다. 생활에 다시 초점을 맞출 수 있다.
과거를 돌아 봄으로써 긍정적인 변화가 오는 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한번 시도하여보자. 스트레스나 실패로부터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사람, 즉 쉽게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 향수나 추억을 이용해 어려움으로부터 자기를 낙천적인 마음으로 끌어 올린다고 한다. 우리들도 부정적인 마음으로부터 긍정적인 상태로 끌어 올리기 위하여 과거로 한번 되돌아가보자.
8. 나의 건강을 위하여 - 배가 나온다 살이 찐다고 아내가 걱정을 하면 나는 한국전 당시의 생활로 돌아간다. 여러 가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격어 보았지만 배고픈 고통이 그 중에서도 제일 참기 어려웠다. 김일성군에게 점령당한 서울시민들의 참상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루에 한끼 그것도 묽은 호박, 보리죽으로 연명하니 배가 고파 자다가도 깨고는 하였다. 하얀 쌀밥과 콩나물국, 두부, 호박 부침 등 전쟁 전에 즐겼던 음식들이 항상 머리 속에 그려지곤 하였다. 6.25 사변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그 속에서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름지고 열량이 높은 현재의 음식을 최대한 줄이고자 함이다. 그래서 전쟁 당시의 음식으로 돌아와 본다. 보리밥, 비지 찌게, 진짜 수제비(조선간장이 조미료의 전부), 우거지국 등으로 그것도 소량으로 먹어 몸 무게를 5 - 10 파운드 빼고는 한다. 당시에 형편없다고 여기던 음식들이 이제 와서는 건강 음식이 되었다. 1950년말 국군장병들의 콜레스테롤을 서울의대에서 측정한 결과 그 수치가 거의 모두가 0 에 가까웠다고 한다. 나는 조심하지 않으면 그 수치가 200에 육박한다. 그 어려웠던 시절의 음식이 나의 건강을 돌봐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였다. 과거의 기억들은 이제 이렇게 나의 보물이 되어가고 있다.
9. 비참한 역사의 되풀이를 피하기 위하여 - 위에서 언급한 6.25 사변을 상기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국전 같은 비참한 전쟁을 다시 겪지 않으려는 개인의 노력이다. 6.25 는 분명히 이북의 불시 공격으로 시작된 침략전쟁이며 남한은 그것을 미리 탐지하지 못하였고 준비가 전혀 없어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다. 이런 민족상쟁의 전쟁을 우리는 역사와 사실만 인정한다면 피할 수 있다. 이북의 호전성, 인권무시, 무력이 그 전부인 그 지도자들의 속성을 알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의 준비를 하여 단결하여 대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무너지는 것을 본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원칙 없는 대북정책과 일부 국민들의 몰지각한 행위들이 참혹한 전쟁의 재발을 유도하고 있다. 이미 용도 패기 된 공산주의라는 이데오르기를 앞세워 어린 학생들을 오도하는 철없는 일부 일선 교사들과 국민을 속이는 인기주의에 편승한 긴 안목 없는 정치인들이 나라를 위험수위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 세대의 잘못이 크다. 6.25 날에 기념식만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그 참상을 구체적으로 알릴 수 있는 무엇인가를 했어야만 하였다. 예로 그날만은 보리죽 한끼로 때우는 것을 권장하고 참상을 알릴 수 있는 책들을 널리 보급하였다던지. 결코 늦지는 않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이를 반전 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6.25 자체는 비극이다. 하지만 이후의 눈부신 경제 발전은 감격이다. 비극을 피하고 감격을 유지키 위한 노력이 한국인들의 과제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큰 눈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일부 한국인 (현재와 과거의 사실들을 부인하는)들은 마음속의 꽈배기 공장을 때려 부수고 모든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만 한다. 전쟁이 재발하면 감격은 저절로 사라진다. 노예 생활을 잊지 않고 감격을 지속 시키려는 유태인 (2. 구원의 감격을 잊지 않기 위하여) 들의 실천하는 생활 습관과 문화는 한국인에게 시사 하는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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