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통에 갖힌 '소금 덩어리' 된 교회

조회 수 17753 추천 수 0 2018.01.14 21:30:46

"일망무제로 펼쳐진 바닷물은 소금을 내장하고 있으나 아직 소금은 아니다. 염전에 갇혀 뽀얀 폭양 아래 몸을 뒤채면서 헛된 수분을 증발시키지 않고는 소금이 되지 않는다. 그 빛나는 결정체를 이룰 수 없다. 박이약지博而約之라. 폭넓은 섭렵(博)이 하나의 초점을 통해 집약(約)되지 않는 한 어떠한 결실도 기약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는 '자기 부정'을 요구했다. '자기 부정'을 통해 삶을 거르지 않는 한 소금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리라." (김기석 목사의  <삶이 메시지다>)

"염전에 갇혀 뽀얀 폭양 아래 몸을 뒤채면서 헛된 수분을 증발시키지 않고는 소금이 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소금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을 바꾸어 줍니다. 무심코 찍어 먹고, 집어넣던 소금이 그토록 힘든 과정의 결과물임을 리얼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박이약지博而約之"라는 표현 또한 그 과정에 필요한 인내와 오랜 기다림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듯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해줍니다. 목회자라기보다 언어의 마술사인 시인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범생인 저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먼 피안의 사람인데도 이웃처럼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분에게서 진짜 소금 냄새가 나기 때문인 듯 싶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소금이 그냥 소금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소금이라는 빛나는 결정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소금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이 소금이라고 이해하고 생각한다고 해서 소금인 것은 아닙니다. 자기부정을 통해 삶을 걸러내야 합니다. 염전에 갇히고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 온몸이 달구어지고 그래서 꼭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욕망들이 수증기로 변해 몸 밖으로 다 날아가 버렸을 때 비로소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욕망이 있던 그 자리에 다른 이들의 욕망이 스며들 수 있도록 그렇게 자기 속을 비워내야 합니다. 그래야 소금은 빛나는 결정체이면서도 물을 만나고 음식을 만나 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금은 녹아 모든 음식에 맛을 더해줍니다. 녹지 않는 소금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모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짜게 할 수 없으면 소금은 맛을 잃은 것입니다. 녹지 않으면 짜게 할 수 없는 소금의 특성을 들어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 속으로, 다른 사람들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스스로 세상의 십자가 위에서 소금으로 당신을 녹여 없애버리셨습니다. 당신의 맛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세상에 녹아들어 자신을 없애신 그 마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자가를 높이 매단 채 교회를 아무도 침범하지 못할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예수의 사랑을 마음에 품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는 세상 속으로 녹아 없어져야 하는 소금 덩어리입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종단이 아니라 교단이라는 라벨을 붙인 교리가 아니라 녹아 없어지는 사랑인데 우리는 자꾸만 소금벽을 쌓아 세상과 구별되기만을 원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말만으로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세상의 소금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 맛을 내지도 못하면서 자기 신앙이 짜다는 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로, 세상에로 녹아들어가지도 못하면서 소금이란 짠 것이라는 주장만으로 짠맛을 내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짠맛이 다른 이들을 위한 희생과 섬김이 아니라 또 다른 자기중심의 특성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녹아 없어져야 할 이타적 자아를 녹지 않는 완고한 이고(ego)로 만들면서 믿음을 가지기 전보다 더 배타적이고 교만해지기만 한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박이약지의 빛나는 결정체인 소금은 교회와 세상,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 나와 남을 구분하여 나를 내세우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녹아들어갑니다. 결국 교회도 세상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이란 자기의 존재를 세상과 다른 이들에게 녹여 들어감으로써
거기서 비로소 자기를 찾는 존재입니다.

녹지 않는 소금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소망을 줄 수도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새 소금이 된 사람들만이 빛의 알갱이가 되어 세상을 밝힌다. 초는 자기 몸을 태워 빛을 발하고 사람은 이웃 때문에 애를 태워 빛을 발한다는 말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남루하고 질척거리는 세속의 삶 위에 우뚝 솟아 고고하게 빛나는 정신도 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상처받은 이웃들을 어루만지기 위해 항간에 엎드린 이들에게서 발산되는 빛의 알갱이들보다 결코 더 밝다고 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라고 교회당 밖에 두른 빛의 띠도 참 빛은 아니다. 그 빛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환하게, 따사롭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살이에 지쳐 싸늘하게 식어버린 가슴에 봄을 가져오는 사람, 존재만으로도 기쁨의 노래를 불러오는 사람, 사람 속에 깊게 숨겨진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는 사람, 그가 빛이다."

군더더기 없이 빛을 설명해줍니다. 결국 빛과 소금은 서로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한 실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입니다. 좀더 깊이 이해하고 더 많이 섬기고 희생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도록 합니다. 빛에 대한 김기석님 목사님의 이해가 녹는 소금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도와줍니다. 그 빛에 대하여 좀더 근원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진리를 관조할 수 있는 빛이 처음부터 비치고 있다. 은총의 빛, 영광의 빛이 그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우리의 인생은 캄캄한 밤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어려움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좌절하는 순간들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넘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지는 않았기에 지금 이곳까지 왔습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그 어둠 속 깊은 곳에 우리를 이끌어주는 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꺼진듯 보이지 않고 때로는 너무도 희미했지만 나의 삶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한 빛이 있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은총의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첫날 빛을 창조하신 이래 그 빛은 항상 있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 빛은 지금껏 내 인생을 비춰 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 빛은 인생을 밝혀주는 희망의 등불이며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빛을 느끼는 자만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지속하는 한 그 빛은 계속될 것이며 우리의 인생 또한 계속 될 것입니다. 그 빛의 실체를 드러내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요1:9-11)

그 분은 참 빛이십니다. 그 빛이 세상에 비쳤습니다. 빛이신 그분께서 보지 못하는 소경의 눈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나 본다고 하는 이들은 그 빛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빛을 보기 위해 우리는 지금껏 뜨고 있던 내 눈을 감아야 합니다. 그제야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그 한 마디가 얼마나 깊은 깨달음인가를 말한다면 엉뚱한 이야기가 될까요? 우리는 눈을 뜨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을 때에만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자는 그 또한 예수님처럼 세상을 밝게 비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그리스도인들은 빛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희망입니다. 그  빛은 한 인생을 밝혀주는 희망의 등불이며 미래를 향하여 살게 하는 힘입니다. 인생은 그 빛에 의해 계속 됩니다. 하지만 자기를 희생하고 태우는 것만으로 우리가 그 빛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빛을 증폭시키고 더 활활 타오르게 할 수는 있지만 그 빛은 나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처럼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며 그분의 등을 보았을 때,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채식만을 먹었을 때,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죽기까지 순종했을 때 우리는 참 빛으로 빛나는 존재로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는 그 빛을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마12:20)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들 또한 그분처럼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들을 멸시하여 꺼져가는 심지를 불어 끄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내는 빛,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어 모두가 함께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부활 때 그리스도인들이 축하하는 영원한 삶의 기쁨은 바로 이 꺼지지 않은 심지의 불이 밝혀주는 기쁨일 것입니다. 

아! 우리가 정녕 그렇게 소금과 빛이기만 하다면 우리가 입으로 복음을 말하지 않아도 복음은 부흥의 불길 속에서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 2:14)는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는 바로 그 순간일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최태선 / 어지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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